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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회복 | 라이프 인사이트

알고리즘에 잠식당한 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

by 이끼꽃 2025. 5. 19.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성”
출처:챗gpt 이미지 생성

 

디지털 삶의 무게는 보이지 않게 쌓인다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온라인에 접속된 채 살아간다. 눈을 뜨자마자 손이 닿는 스마트폰, 반쯤 감긴 눈으로 툭 누른 알림 하나가 하루를 통째로 끌고 간다. 푸시 알림, 광고, 짧은 영상, 끝없이 이어지는 피드. 이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중력처럼 끌어당긴다. 우리는 그 흐름에 따라가고 있지만, 그것이 점점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그건 대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가령, 집중력의 저하,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는 습관, 가만히 있는 걸 불편해하는 조급함 같은 것들. 결국 우리는 시간과 선택권,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까지 조금씩 내어주었다. 그 결과, 오랜만에 고요함이 찾아와도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 채 멍해지곤 한다. 고요함은 낯설고, 침묵은 불안하다. 한때는 익숙하고 소중했던 감정이었는데도 말이다.

 

기계는 쉬지 않지만, 인간은 쉼이 필요하다

1. 디지털 피로: 모든 시간이 ‘쓸모’로 계산될 때

디지털 시대의 가장 교묘한 특징 중 하나는 일과 쉼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재택근무와 실시간 일정, 24시간 가능한 소통 수단.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주머니에 업무를 넣고 다닌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도 사용하는 플랫폼들은 회복보다는 몰입을 유도한다. 자동 재생, 무한 스크롤, ‘좋아요’를 통한 보상 시스템은 휴식이 아니라 ‘집중’을 만든다.

우리의 뇌는 이렇게 지속적인 자극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콘텐츠가 많을수록 더 유익하다고, 더 행복해질 거라고 착각한다. 그 결과는 정반대다. 디지털 피로는 단순히 눈이 피곤하고 손가락이 아픈 걸 말하지 않는다. 그건 훨씬 깊은 차원의 침식이다. 마음이 무뎌지고, 집중이 어렵고, 하루의 끝엔 어쩐지 지쳐 있지만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상태.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다. 뇌가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에서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거기에 붙들려 있다. “혹시 놓친 게 있나?”, “누가 메시지 보냈을까?”, “내 게시물엔 반응이 있었을까?” 이런 질문들이 무의식적으로 우리를 기계적인 리듬에 얽매이게 한다. 문제는, 기계는 지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지친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무한 출력 가능한 존재처럼 다룬다. 그러다 결국, 아주 조용하게, 정신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2. 연결이라는 착각: 북적이는 피드 속의 고독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많은 사람과 즉각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시기는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호소한 시기도 없었다. 피드는 가득하고, 반응은 쏟아지지만, 그 속에서 ‘진짜로’ 나를 바라봐주는 눈길은 찾기 어렵다.

알고리즘은 성과를 중시하고, 진심은 계산하지 않는다. 보여지는 것, 눈에 띄는 것, 빠른 것만을 밀어준다. 우리는 결국 잘 꾸며진 파편을 조합해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쓰게 된다. 그러나 진짜 연결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속도나 노출보다 더딤과 기다림, 허술함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그걸 모른다.

사람들은 점점 ‘보여지는 나’를 중심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고, 점점 진짜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 된다. 관계는 점점 얇아지고, 대화는 반응으로 대체된다. “잘 지내?”, “응”으로 끝나는 대화가 늘어나고, 누군가의 삶을 보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호기심이 된다. 그렇게 피드는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 나와 ‘진짜로 연결된’ 사람은 없다.

이 외로움은 조용하다. 드러나지 않는다. 눈물이 터지지 않고도, 그저 가슴 어딘가가 쓸쓸한 느낌.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된 듯한 순간에도 정작 마음은 텅 비어 있는 감각. 나는 분명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는데, 정말로 나를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는 그 모순된 현실.

 

3. 최적화의 시대, 나는 누구인가?

가장 무서운 변화는, 알고리즘이 우리를 조용히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단순히 나를 위한 맞춤 추천 같았던 것이, 어느 순간 내 취향을 ‘결정’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좋아할 만한 것들만 추천받는다. 그 결과, ‘선택의 자유’는 줄어들고, 길들여진 기호만이 남는다.

알고리즘은 나를 알지 않는다. 단지 내가 ‘클릭하는 패턴’을 학습할 뿐이다. 나의 생각이나 감정, 가치관보다 ‘데이터’만이 중요하다. 그렇게 우리 안의 복잡한 감정들은 점점 침묵한다. 자기성찰은 자기브랜딩으로 바뀌고, 호기심은 소비로 대체된다.

우리는 매 순간 사소한 선택을 반복하며 산다. 어떤 영상을 볼까, 누구를 팔로우할까, 어떤 옷을 입을까. 하지만 이 모든 선택은 이미 ‘프레임’ 안에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고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게 가장 무서운 점이다. 우리는 ‘자유’를 착각한다. 사실은 정교하게 설계된 틀 속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인데.

이런 삶이 반복되면 결국 내 안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그 목소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던 유일한 나만의 감각이었는데, 이제는 외부 자극에 밀려 들리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나일까? 아니면 수많은 추천과 반응 속에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콘텐츠’일 뿐일까?

 

인간의 고유한 리듬을 회복하는 일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속도와 자극, 효율과 최적화로 가득 찬 세상에서, 어떻게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답은 기술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깨어 있는 것. 기계적인 흐름 속에서도 나의 리듬을 지키고, 나의 목소리를 다시 발견하는 것. 도구는 본래 인간의 손에 있을 때 가치가 있다. 문제는 우리가 도구가 아니라 도구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다시 ‘지루함’을 허락해야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고, 조용한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눈을 맞추고, 타이머 없이 대화하며, 아무 목적 없이 걷는 시간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쉼이 ‘생산성의 반대말’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성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행위임을 다시 배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일이다. 알고리즘은 결코 마음을 어루만지지 않는다. 위로하지 않고, 진심을 다루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느리고, 불완전하고, 때론 엉망인 그 모든 것이 인간의 고유함이며,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인간답게 살아가는 건, 반복되는 선택의 싸움이다. 그 흐름 속에서도 숨을 고르고, 다시 중심을 잡고, “나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되뇌는 일. 우리는 데이터가 아니다. 피드도 아니고, 클릭 수치도 아니다. 우리는 이야기이고, 노래이고, 눈물이고, 웃음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
그건 하나의 ‘혁명’이다.